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든 뱅크스 (문단 편집) == 여담 == || [[파일:BanksGoalkeepingAdvice.jpg|width=100%]] || > 고든 뱅크스가 루카스 맬로우에게 주는 골키핑 조언 > > 안녕 루카스, 너희 아버지 말씀을 듣자하니 골키퍼가 되는 게 꿈이라며? 좋아. 우린 언지나 좋은 골키퍼가 필요하지. 몇 가지 조언을 해 줄게. > > 우선, 열심히 노력해야 해. 골키퍼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야. 하지만 네가 노력한다면 더 쉬워질거야. > 많은 플레이를 하다 보면 알맞는 각을 찾기 쉬워질 거야. 어디로 공이 향할지 알 수 있게 되지. 이걸 '예측'이라고 불러. 좋은 골키퍼는 좋은 에측 능력을 가지지. > 눈은 공의 방향과 경로를 파악해서 뇌와 손에 메시지를 보내지. 계속 연습해. 익숙해질 거야. > 자신이 골대의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 파악하고, 각을 좁혀서, 스트라이커가 득점할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낮춰야 해. > 작은 공으로 훈련해 봐. 작은 공에 익숙해지면 큰 공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쉬워질거야. > 탁구 같은 운동을 해 보는 것도 좋아. 그런 스포츠는 반응을 예리하게 해 주고, 손과 눈의 협응성을 길러 주지. 테니스 공을 벽에 던지고 다시 받는 훈련을 하는 것도 좋아. > 그리고 용감해져야 해. 뛰어나가서 크로스를 차단하거나, 너를 지나쳐 득점하려는 스트라이커의 발로 뛰어들려면 용감해야 해. > 그리고 또 강해져야 해. 실점하거나 실수할 수도 있어. 그건 우리 모두가 그래. 나도 가끔 실수하거든. 하지만 나는 내가 당황한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게 하지. > 행운을 빌게. > > 고든 뱅크스 * 위 글은 뱅크스가 루카스 맬로우라는 소년에게 해 준 조언이다. 현대 축구의 골키퍼에게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니, 혹시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포지션이 골키퍼라면 주의 깊게 읽어 보자. * 1937년 셰필드에서 태어난 뱅크스는 어려서부터 골키퍼에 매력을 느끼고 학교에서 골키퍼로 뛰었지만 당시엔 축구를 직업으로 할 생각까지는 없었다고 한다. * 그가 사고로 눈을 잃어버리자 한 열혈 팬이 뱅크스에게 자신의 눈을 기증하겠다고 했지만 뱅크스는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사랑받는 선수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눈을 잃고 한 동안 스토크 시티와 포트 베일에서 스카우트와 코치로 일하다가 5년 뒤 북미 축구 리그의 포트 러더데일 스트라이커스에서 선수로 뛰게 된다. 위에 서술했듯이 그는 시력 장애에도 불구하고 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되기도 한다. * 2001년에는 자신의 월드컵 메달을 경매에 붙여 124,750파운드에 팔기도 했다. 이유는 자식들이 그의 사망 후에 메달을 놓고 고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 [[파일:BankShilton1.jpg|width=33%]][[파일:BankShilton2.jpg|width=34%]][[파일:BankShilton3.jpg|width=33%]] || * [[피터 쉴튼]]과는 운명의 선후배 관계다. 띠동갑일 정도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조금 늦게 빛을 본 뱅크스와 달리 쉴튼은 매우 이른 나이부터 초특급 유망주로 평가받으며 폭풍성장했고 쉴튼의 재능을 알아본 뱅크스가 쉴튼의 멘토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이러한 성장 배경 때문인지 쉴튼은 은퇴 이후에도 뱅크스가 자신의 우상이라고 자주 언급하고 다니벼, 뱅크스도 쉴튼에 대한 좋은 평가를 많이 했다. 둘은 레스터 시티에서 스토크 시티로 이적했다는 공통점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수문장 자리에서도 배턴 터치를 한 특이한 사례이다. * 한편, 뱅크스가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 쉴튼은 클럽의 주전 자리를 보장해주지 않으면 프로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했고, 결국 1967년 레스터 시티는 뱅크스를 스토크 시티로 이적시켰다. 이러한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었는데, 하루는 뱅크스가 리차드 3세 초등학교에서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다가 당시 13세였던 [[피터 쉴튼]]을 보고 구단의 코치인 조지 데위스에게 "저 아이는 정말 잘하는군."이라고 말하며 감탄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피터 실턴을 직접 본 데위스는 '''"저 아이가 곧 너를 1군에서 밀어내겠는걸?"'''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실제로 3년 후 실턴은 뱅크스를 이적하게 만들고 만 16세에 불과한 나이에 레스터 시티의 주전 수문장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봐도 당시 쉴튼이 순수하게 실력으로 뱅크스를 밀어낸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애초에 쉴튼이 그 정도로 대단했으면 국가대표팀에서도 쉴튼이 곧바로 주전 자리를 차지했을 텐데, 쉴튼은 뱅크스가 1972년 부상으로 은퇴하고 나서야 국가대표팀 주전 자리를 차지했으며, 이마저도 1970년대 중후반까지 레이 클레멘스와 엎치락뒤치락하며 로테이션으로 출전하다가 1980년대가 되어서야 완전한 주전 골키퍼로 자리잡았다. 레스터에서 진행된 이 둘의 세대교체는 2014-15 시즌 첼시의 체흐-쿠르투아 세대교체와 비슷하게 '나이'가 주된 이유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시에는 골키퍼의 가치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이가 많든 어리든 이적료가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실제로 1960년대 중반부터 뱅크스는 고향 연고팀 스토크 시티는 물론 리버풀, 에버튼 같은 빅클럽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고, 특히 1967년에는 리버풀 이적 직전까지 갔으나 아쉽게 불발된 적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레스터 입장에서는 곧 30대가 되는 뱅크스보다는 그보다 열두 살 어리고 미래도 밝아 보이는 쉴튼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덴마크]]와 맨유의 전설적인 골키퍼인 [[페테르 슈마이켈]]의 우상이라고 한다. [[페테르 슈마이켈]]은 뱅크스의 칭찬을 듣고 그저 예의바른 칭찬일 뿐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것만 해도 온 몸에 전율이 흐를 정도로 환상적이라고 표현했다. * 같은 팀이었던 [[스탠리 매튜스]]에 대해 '잉글랜드 축구사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라고 언급했다. * 2002년에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FIFA 월드컵/공인구|공인구]]인 [[자블라니]]에 대해서 "공이 너무 가벼워서 공기 중에서 좌충우돌 움직인다. 골키퍼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라고 평가했다. * 2010년 1월 영국의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잉글랜드 대표팀의 골키퍼들은 기복이 너무 심하다."라며 대표팀에 마땅한 주전 골키퍼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뱅크스는 이렇게 된 원인을 자국 프로 리그에서 찾았다. "프리미어 리그는 전부 외국인 골키퍼들이 장악했다. 감독이 뽑을 선수가 없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 지금 현재도 EPL은 자국인 슈퍼 스타 플레이어보다 외국인 슈퍼 스타 플레이어가 많다는 평가가 우세하다는 것을 본다면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인 듯하다. 그런데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드디어 [[조던 픽포드]]라는 훌륭한 골키퍼가 나왔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 "시즌이 끝날 때까지 결론을 짓기 어려울 것 같다. 마지막까지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골키퍼가 선택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골키퍼 기용에 대해 "경험이 없는 [[조 하트]]보다 [[폴 로빈슨]]을 기용하는게 나을 것"이라는 주장을 했고, 조 하트 또한 "뱅크스와 같은 사람들의 말을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전설적인 선수이다. 나에게도 영웅인 선수이다"라며 큰 존경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는 이어 "비록 그를 존경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의견을 마음 속에 담고 있지 않는다. 월드컵 대표팀에 소집되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의미를 준다. 이제 나가서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할 때."라며 자신이 월드컵 대표팀에 속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때 카펠로가 주전으로 선택한 키퍼는 다름 아닌 [[로버트 그린]].[* 물론 그린은 당시 리그에서 훌륭한 활약을 보여줬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는 듯 했으나 본선에서 너무 큰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 [[파일:Bankswithtorch.jpg|width=100%]] || * 2012년 런던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성화가 [[웸블리 스타디움]] 앞을 지날 때 뱅크스의 손을 거치는 것을 보면 감회가 남다르다. [각주] [[분류:1937년 출생]][[분류:2019년 사망]][[분류:잉글랜드의 축구선수]][[분류:잉글랜드의 축구감독]][[분류:골키퍼]][[분류:체스터필드 FC/은퇴, 이적]][[분류:레스터 시티 FC/은퇴, 이적]][[분류:스토크 시티 FC/은퇴, 이적]][[분류:AFC 텔퍼드 유나이티드/역대 감독]][[분류:잉글랜드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62 FIFA 월드컵 칠레 참가 선수]][[분류: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참가 선수]][[분류: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참가 선수]][[분류:UEFA 유로 1968 참가 선수]][[분류:대영제국 훈장 4등급]]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